평화의길 강화에서 만나다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전, 양인들이 강화해협 수로 측량을 시작했다.

병인양요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함을 직시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나아가야 한다. 과연 소년의 희생은 어떠한 의미인가.


2021년 어느 날,

150년 전으로 타임 슬립을 한 시간 여행자. 소년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모한 싸움을 말려야 하는가.

그의 희생이 내 삶,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대가였음을 알려야 하는가.

 

침략자에게 지도를 빼앗기기 전에 찾아야 한다. 

그가 간절히 염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소망했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용흥궁

조선 25대왕 철종이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기 전 약 5년간 가족과 유배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은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로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갑자기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철종이 왕위에 오를 당시 세도 정치가 계속되고, 전국에서 농민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강화도령 원범으로도 조선의 왕 철종으로도 원치 않은 삶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본래는 보잘것 없는 초가였지만 철종이 왕위에 오르고 난 후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이름을 궁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랑채 옆 공간에는 ‘철종조잠저구기’ 라고 하여 ‘철종 임금님이 머무시던 왕의 저택이 있던 옛터’ 라는 뜻이 새겨진 비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