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길 강화에서 만나다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전, 양인들이 강화해협 수로 측량을 시작했다.

병인양요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함을 직시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나아가야 한다. 과연 소년의 희생은 어떠한 의미인가.


2021년 어느 날,

150년 전으로 타임 슬립을 한 시간 여행자. 소년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모한 싸움을 말려야 하는가.

그의 희생이 내 삶,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대가였음을 알려야 하는가.

 

침략자에게 지도를 빼앗기기 전에 찾아야 한다. 

그가 간절히 염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소망했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고려궁지

고려왕조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부터 다시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 머물렀던 궁터입니다. 궁궐은 허물어져, 현재 고려 궁터의 정확한 범위와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 고려궁지에는 조선시대 때도 행궁을 짓고 임금이 난을 피하곤 했는데, 이 행궁 안에 외규장각이 있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의궤 등 귀중한 보물을 모두 약탈해 가고 건물까지 모조리 불태웠다고 하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고려궁지에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인 동헌이나 이방청 등과,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이 남아있고, 외규장각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외규장각

외규장각은 정조 임금때 설치된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으로 왕실 관계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의궤를 포함한 서적이 약탈되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습니다.(의궤는 왕의 결혼이나 세자 책봉, 장례 등과 같은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유산입니다.)

1975년 박병선 박사에 의해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가 발견된 후지속적으로 반환 협상을 해왔고, 약탈 당한지 145년만인 2011년 약탈해 간 조선왕실 의궤를 포함한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갱신의 영구 임대 방식으로 4차례에 걸쳐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